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초반의 싸이월드 인기는 대단했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다 트위터다 넘쳐나는 SNS들에 밀려,
싸이월드는 그냥 지나간 추억만 남은 앨범처럼 되어버렸지만.
가끔씩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읽어볼 때가 있다.
싸이월드가 다 뭐라고 정말 하루하루 공들여서 일기를 썼었지.
한 해가 지나면 그 해 숫자로 된 폴더를 새로 만들고
작년 치 일기장은 비공개로 돌린 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곤 했었다.
아 작년엔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지금은 나이가 들어선지 매일 숫자 놀음이나 하고 있어선지
지난 일기를 읽어도 큰 감흥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그저 잊어진 오래된 기억일 뿐이기에
다른 사람의 일기인 것 마냥 읽을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지.
아래는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의 일기다.
새벽 4시 13분, 나는 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일기나 끄적거리고 있었는지.
그 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1.
<멀리가는 이야기> 김보영씨의 SF 중단편 소설집.
마지막에 비처럼 떨어졌을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별을 본 게 언제였던가.
2.
난 그저 아버지가 30여년 전 걸어갔을 길에 발을 슬쩍 디밀어보았을 뿐인데, 이토록 격하게 아버지가 존경스러워질 수 있는가. 겪지 않고는 알지 못하는 나의 빈약한 상상력. 철들지 않을거라 공언하고 다닌 나도, 요즘의 나를 보자니 느끼는 바가 많다.
3.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다음으로 집어든 책은 <남자들, 쓸쓸하다>이다.
사실 이 책의 일반화된 남자상이 우리 아버지와는 너무 달라 의아했다.
언제나 밝게 지내려 노력하시고 때론 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신 우리 아버지...
4.
결혼은 너와 내가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하는 거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 때의 난, 아, 난 너무 어렸구나라며 자책했었다.
5.
트위터는 소통의 장이다.
나도 언젠가 사회적 위치가 생기고, 나와의 친분이 아니라 나의 직업과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팔로잉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이면 1~4번과 같은 이야기를 '개재'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트위터보다 미니홈피의 독자가 더 많다. 블로그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열정이 사그라든 지금, 나의 창작욕을 최소한이나마 만족시켜주는 곳이 미니홈피 다이어리라는 점은, 사실 조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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