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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는 덜컹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잠깐 생각에 잠겨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나있다. 눈 앞에 빠르게 스치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시간 참 빠르다 싶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앞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눈에 익숙해지더니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시선을 내리깔고 비어있는 자리가 있나 탐색하던 남자는 점점 많아지는 사람 수에 이내 단념한다. 젠장, 자리를 잘못 잡았잖아.

마침내 멈춰선 열차. 마지막 희망을 놓치 않던 남자는 왠 여자가 역이름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남자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빠르게 스캔하고 나이든 분이 없는지 확인한다. 살짝 몸을 문쪽으로 옮겨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돌아가게끔 유도한다. 준비는 끝났다. 저 자리는 남자의 소유가 되리라.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남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은 없었음을 기억해낸다. 사람들이 많이들 죽어나갔더랬지.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이 역을 통과하는 열차입니다. 한발짝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 직후 빠르게 스쳐지나는 열차를 보노라면 그 밑에서 바스러져간 사람들을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몸은 몸서리쳐지고 표정은 굳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이런. 잠깐 망상에 잠겼을 뿐인데 내리는 사람들이 남자 쪽으로 치우쳐져 버렸다. 두 라인 중 남자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열차로 진입한다. 자신의 것이 되리라 철썩같이 믿었던 (사실은 그렇게 되길 강하게 소망했던) 남자는 그저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문 옆 자리가 비어있어 남자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금새 채워진 자리를 힐끗 곁눈질하며 입맛을 다지던 남자는 눈길을 애써 떼어내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왠지 지금 나오는 음악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 리스트를 열어 노래 하나를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뿜어져나오는 가수의 실황 공연에 남자는 팔에 소름이 조금씩 돋아오름을 느낀다. 좋은 곡이다. 카페에서 놓치지 않고 이 곡을 찾아 추가해둔 자신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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